▲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 연주하는 빛의 연주, 심포니 오브 라이트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홍콩은 밤의 도시이다. 현란한 자본주의의 빛으로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hony of Lights)'를 연주하는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가슴이 벅차지지 않으랴.

구룡반도 센트럴의 멋드러진 건물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중국은행이다. 사진의 네번째 건축물로써 죽순과 같은 모양의 대각선으로 쌓아올려진 저 건물은 중국계 미국인인 Leoh Ming.Pei가 디자인하였다. 그는 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홍콩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물이자 도시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얼마전 나는 세 명의 여인들과 함께 3박 4일의 일정으로 홍콩여행을 다녀왔다. 홍콩 국적기 케세이 퍼시픽을 타고 3시간의 비행 후 첵랍콕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홍콩의 상징인 붉은 택시를 타고 예약한 숙소가 위치한 침사추이의 '너츠 포드 테라스'로 향한다. 위치는 좋으나 조금 낡은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어느덧 오후, 저녁식사와 함께 반주를 곁들일 곳은 One peking Road에 자리한 '아쿠아'레스토랑으로 향했다. 29층에 위치한 이 곳은 사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식사를 즐기며 '심포니 오프 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나 단점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 1인당 HK$350이상을 먹어야 하고 부가세 10%는 별도이다. 식사와 칵테일 하나씩을 시키고 네온이 춤추는 홍콩의 밤바다를 감상한다. 해변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즐기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도 아름답고, 고급요리들과 즐기는 레스토랑에서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도 즐겁긴 매한가지다. 문제는 가진 돈의 액수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그 흥취가 더하거나 덜하거나의 문제가 아닐까.

▲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한 홍콩의 여러가지 딤섬 퍼레이드

다음날은 전날의 지출을 감안하여 조금 저렴한 식당으로 일행들을 안내하였다. 숙소 뒤편의 차찬탱(茶餐廳 )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몰려갔다. 차찬탱은 홍콩의 동네 분식점과 같은 곳으로 저렴한 가격에 세트메뉴로 홍콩식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취화차찬탱, 미도까페, 호주 우유공사 등이 유명하고 가격도 한화 5,000원 미만이다.

아열대 기후라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다. 20년은 족히 되었을법한 낡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열기를 분산시키려 분투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어쩌면 이리도 시끄러운 것일까. 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탁자를 두들기고 이 빠진 접시들을 늘어놓은채 침을 튀기며 대화에 열을 올린다. '뿌요, 하오, 마이딴'과 같은 단어들이 귓가에 작열한다.

나는 평소에는 마시지 않지만 홍콩에 오면 꼭 마시는 뜨거운 밀크티를 주문하고는 설탕을 듬뿍 넣는다. 그들의 고함소리를 흘려들으며 밀크티를 혓바닥으로 홀짝거리고 있노라니 비로소 홍콩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흐뭇해진다.

▲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들이 키치적인 예술품으로 둔갑되어 소호의 어느 화랑에 전시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소호로 향한다. 홍콩의 지하철인 MTR은 노선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관광지와의 연계도 편해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도심 주변으로 몰려 있는지라 택시요금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는 MTR과 택시, 스타페리를 섞어서 이동하였다. 소호까지는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일정을 계획했다. 1993년에 개통된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총 길이 800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실외 에스컬레이터이다. 이 부근에 벼룩시장인 캣 스트리트와 소호, 헐리우드 로드, 만모사원등이 몰려있다. 원래는 산꼭대기 주민들의 출퇴근용으로 만들어진 이 에스컬레이터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하며 몸값을 더 올렸다.

에스켈레이터 중간중간에 내려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도 사먹고 양조위가 자주 간다는 '구기우남'이라는 국수집에서 우육면도 사먹는다. 혹여 모자를 눌러쓰고 국수를 흡입하는 양조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0.5%, 국수에 대한 기대감은 95%, 향신료와 고기가 잔뜩 든 국수를 먹고 만모사원까지 땀을 흘리며 걷는다.

걷다가 너무 더워 눈에 띄는 커피숍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청해 테라스에 앉았다. 길 옆의 골동품 상점 앞에는 런닝셔츠와 낡은 슬리퍼를 신은 중년남자 두 명이 담배를 피우며 우리들을 구경하고 우리는 그들을 구경한다. 햇살은 버드나뭇가지 위에 열십자모양으로 빛난다.

▲ 1994년 개통된 세계 최장의 옥외 에스컬레이터,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만모사원(文武廟)은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사원이다. 무신 관우와 문신 문창제를 모시고 있다. 사원 안에는 향이 타는 내음이 매캐하다. 일행들에게 관우를 만지면 돈을, 문창제를 만지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하니 모두가 달려들어 두 신의 모형을 칠이 벗겨지도록 문질러댔다. 이국의 낯선 신에게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머리를 조아리고는 사원을 나와 캣 스트리트를 걸어간다. 싸구려와 고가의 기념품들을 파는 조그만 상점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하나의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가격은 주인이 부르는데로 주면 안되고 본인이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가격선에 맞춰서 흥정하면 된다. 나는 유약을 바른 작은 연적을 3만원에 구입하고 기분이 흡족하다. 옛 중국 문화의 하나인 전족이 알록달록 전시되어 있고 고대미녀를 그린 족자들과 작은 접시들, 담배와 음료수를 파는 가게들을 구경하며 걸어가면 헐리우드 로드가 나온다. 소호에는 여러 갤러리들과 최신 유행의 레스토랑과 Bar, 작은 쇼핑센타와 고급 가구점들이 줄을 이어있다. 몇몇 갤러리에 들러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을 구경하며 홍콩미술의 유행을 짐작해본다.

▲ 홍콩에서 가장 오래 된 도교사원인 만모사원의 선향, 향이 다 타는데 3일이 소요된다.

스파페리를 타고 10분간의 항해로 센트럴과 침사추이를 가로지른다. 뜨뜻미지근한 해풍을 맞으며 바라보는 빅토리아 만은 고요하다. 원래 중국땅이었다가 아편전쟁을 계기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 땅은 1997년 다시 중국에 귀속되었고 현재는 1국가 2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홍콩(香港 ),향나무가 많았던 항구, 뜨뜻미지근한 바람은 아무 냄새도 풍겨오지 않았고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등짝은 저마다 외로워 보인다. 아니 내 기분이 그렇기에 남들도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불현듯 등려군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다음날, 딤섬으로 아침을 먹는다. 홍콩에 가면 딤섬 먹는 일이 꽤나 즐겁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딤섬, 차와 함께 갖가지의 음식을 택해 가볍게 식사를 한다. 매운닭발, 작은만두, 찰밥, 샥스핀, 춘권튀김, 에그타르트 등 종류는 수십가지이다. 메뉴가 적힌 용지에 연필로 표시하고 차를 선택해 마시고 있으면 잠시 후에 대나무 찜기에 담긴 딤섬들이 날라져 온다. 유명한 딤섬집으로 예만방, 하카웃, 맥심, 크리스탈 제이드 등이 있지만 홍콩을 여러번 들르며 모든곳을 섭렵해본바 가격의 차이뿐 딤섬은 비슷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위기도 있지만 누구와 함께 얼마나 즐거운 기분으로 먹느냐가 맛있는 식사의 관건이라고 생각하니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러 페닌슐라 호텔으로 갔다. 1928년에 문을 연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인 페닌슐라 호텔은 홍콩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로도 유명하다. 장국영이 투신자살을 감행하기도 했고 유명연예인들의 결혼식 장소나 연회장소로도 이용된다. 주차장에는 롤스로이스와 재규어, 벤츠들이 번쩍번쩍 광을 뿌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애프터 눈 티'를 즐길 예정이다. 영국식 문화의 영향을 받아 티타임을 좋아하는 홍콩인들, 페닌슐라의 '애프터 눈 티'는 은제 트레이에 담긴 종류별의 디저트와 함께 홍차나 커피를 실내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즐길 수 있다. 예약이 되지 않기에 줄을 서야 한다. 지난번 들렀을때는 30분간 줄을 섰는데 이번에는 십분 정도 기다렸다 입장했다.

이곳은 티 부페 외에도 28층의 '펠릭스'라는 바의 화장실이 유명하다. 음식이나 인테리어가 아닌 '화장실'이 유명하다고? 하며 의아해 하겠지만 홍콩만이 펼쳐지는 전체 통유리로 되어있고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디자인을 했기에 술을 안 마셔도 화장실은 모두가 한번씩 다녀가고 싶어한다.

▲ 도심에서의 이동수단 트램과 이층버스, 옥토퍼스 카드로 모두 이용이 가능하다. 버스는 잔돈을 주지 않기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즐거운 티타임을 가진 후 일행들은 기념품 구입이나 쇼핑을 위해 하버시티로 향했다. 쇼핑의 천국 홍콩이라 하지만 백화점에는 메이저급 작가들의 미술 전시회도 상시 열리고 있어 쇼핑을 싫어하거나 주머니가 얇은 사람들은 백화점들의 전시회만 돌아다녀도 쏠쏠하게 문화충전을 할 수 있다.

랜드마크, 하버시티, SOGO 등의 백화점을 몇 바퀴 도니 '니키 드 생팔'이나 '페르난도 보테로', '살바도르 달리'등의 대작가들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일행들이 캔톤로드를 돌아다니며 록시땅 핸드크림, 구찌 지갑, 펜디 핸드백 등을 사고 있을때 나는 거리를 걸으며 영화 '첨밀밀'의 한장면을 생각한다. 대륙에서 돈을 벌기 위해 넘어온 장만옥과 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고풍스러운 켄톤로드를 가로지르는 모습, 달콤함을 외치는 등려군의 노랫소리.

현재 그 영화와 같은 풍경은 찾아볼 수 없고 유명브랜드 건물들의 화려함과 쇼핑백을 든 외국인들, 어딘가로 분주히 걸어가는 시민들, 짝퉁을 팔려고 호객을 하는 중동지역 외노자들의 초라함이 한데 어울려 홍콩특유의 시끌벅적함을 이루고 있다.

각자가 살 물건들을 구매하고 빅토리아 피크로 간다. 약 45도의 각도를 거꾸로 올라가는 트램을 타는 일은 매우 즐겁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좀 더 타고 싶은데 곧 내려야 한다. 1888년 케이블 열차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이 길을 가마로 오르내렸다고 한다.

피크 정상에는 홍콩반도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유명하여 각종 영화의 촬영장소로도 많은 명성을 떨쳤다. '성월동화, 유리의 성, 금지옥엽, 영웅본색'등의 촬영지로 영화속 풍경들을 직접 확인하며 일행들은 기뻐하였다.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기 위해 피크 정상에 있는 카페 데코로 향했다. '금지옥엽'에서 장국영과 원영의가 나왔던 레스토랑이다. 창가에 주욱 나열되어 있는 테이블 중 하나에 앉아 이곳이 장국영과 원영의가 앉았던 곳이다라며 허풍을 떨어주니 일행들은 오~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피자와 볶음밥을 시켜 나눠먹으며 산 정상에서 도시의 보석같은 반짝임을 바라본다. 도시의 화려함은 따스함보다는 근접하기 어려운 차가움으로 다가온다.

▲ 65억의 예산이 투입된 영화의 거리, 스타들의 손도장과 이소룡의 동상들의 볼거리가 즐비하다.

홍콩에서의 즐거운 일정이 끝나고 이제 한국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AEL이라는 공항고속열차를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일행이 4명이므로 가격대비 택시가 좋다는 결론에 택시를 탔다. 공항이나 철도역의 분위기는 엇비슷하다.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이 수없이 오고간다. 기쁜 얼굴도 있고 체념이나 슬픔에 빠진 표정도 있고 무표정하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손을 부여잡고 안부를 계속하여 확인하는 사람들, 미지의 세계를 함께 경험할 것에 가슴 두근거리는 연인들과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항시 존재한다. 나는 어떤 부류일까 생각해보니 난 항상 돌아오는것보다 떠나는쪽에 기분이 설레었던 것 같다. 우리들은 모두가 일상의 영속보다 어딘가 다른곳에 있는 또 다른 삶을 꿈꾸며 살지 않는가, 그래서 여행이라는 말은 언제나 가슴이 벅차다.
 

▲ 윤혜영

활주로를 내달려 하늘 위로 몸을 띄운 비행기 안에서 나누는 그녀들의 대화들.
-그런데 장국영은 왜 자살했을까? 돈도 많고 잘생기고 모든것을 가졌는데 말이야
-글쎄, 매번 밥만 먹다가 짜장면도 먹고 짬뽕도 먹고 만두도 먹다보면 탕수육도 먹고 싶고, 라조기도 먹고 싶지 않을까? 그러다가 모두 맛 보고 나면 더이상 흥미가 없어지는 거지
-에이, 언니는 또 먹는거에 비유를 하냐?
-하나만 알았을때는 하나에 만족하는데 갯수가 늘어나면 가지고 있던 그 하나의 소중함조차 잃어버리는거야
-그럼 적게 가질수록 행복한건가?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엇이든 마음가짐에 달린거지
-때론 아는것보다 모르는게 좋기도 하네
-하여튼 세상살이는 복잡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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