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학자 정혼성(鄭渾性)은 거제시 거제면 반곡서원(盤谷書院) 內, 동록당에 안치되어 있으며, 매년 춘3월 첫 정일에 거제 유림들이 반곡서원(盤谷書院)의 우암사 송시열과 함께 제사를 올리고 있다. 호는 동록(東麓), 자는 사성(士成), 초계 정씨(草溪 鄭氏)이다. 1881년 거제의 선비들이 사당을 세워, 석채례(釋菜禮)를 행하고 선생의 호로 인하여 "동록당"이라 명명했다.

거제도 역사상, 조선시대까지 거제도가 배출한 최고의 문인 학자이자 지성인이며, 또한 한시(漢詩)로 문집을 남긴 거제도 토박이로는 유일하신 분이다. 정조3년 기해년(己亥年) 1779년3월에 출생하여 계묘년 1843년 3월 65세로 돌아가셨다.

선생은 거제의 유림이나 사회에서 정군자(鄭君子)라 호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많은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의 시(詩)는 자연과 함께한  도가적 냄새가 짙게 풍기는 산수 전원시풍이 느껴진다.  선생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학문의 표준으로 삼았고 육경(六經)에 통달하였는데 경(敬)으로 마음을 곧게 하고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였으며, 주역(周易)에 심취하여 선경지명이 마치 거울을 비추듯 하였다.

그는 중국의 많은 선인들의 글을 학생 교재로 활용하였으며 시구 하나하나에 해설을 달아 제자들이 쉽게 학문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당시 사용한 교재 중에 두보의 율시 편과, 칡뿌리로 적은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교훈을 인용한 글이 남아 전하고 있다.

다음은 동록 정혼성 선생께서 칡뿌리로 빻아 말린 뒤에 만든 여러 크기의 붓, 즉 갈필(葛筆)을 사용하여 적은 글[갈서(葛書)]이다. 병녀(病女)가 얼굴화장에 매번 정성을 기울인 바를 강조하시면서, 송나라 정자(程子)의 말씀을 인용한다.

“글자를 쓸 때 획마다 엄정한 마음으로 분명하게 하려는 정성은 글자를 아름답게 써서 보기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이 곧 학문의 자세이며, 또한 매사에 있어서 근본이 됨을 말한 것이다”를 언급하셨다.

다음으로 주자(朱子)의 서자명(書字銘)에 나오는, “붓을 잡아 먹물을 적시고 종이를 펴 글씨를 써내려갈 때 전일한 마음이 그 안에 있어야 한 점 한 획이 된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글씨는 거칠어지고 아름다움만을 취하면 미혹하게 된다. 반드시 마음 써야 할 일이 있으니 신명함이 바로 그 덕이다”하니 이에 이러한 글씨 속에 우주가 담겨 있다한다. 붓글씨 속에는 천지산천(天地山川)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법칙이 오묘하게 나타나 있음을 강조한다.

“높은 산기슭도 곧은 듯 굽어있고, 냇물도 구불하다 끝내 그 곧음을 본다. 거제바다에서 일찍이 곧은 파도는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글씨가 드날리다 우뚝 솟은 형상이었다가 거친 듯 부드럽고 굳세고 원만하다. 붓이 구부러졌으면 곧은 것을 구해야 하고, 붓이 둥글면 다시 모나게 할 것이다. 이에 선생께서 3 종류의 붓봉(鋒,붓끝)을 사용하여 해서 초서 예서를 차례로 적었다.

[病女之粉飭良可歎也 程子曰 只此是學, 朱子曰必有事焉 神明厥德則點畵之中可知 其四象八卦形體也] [於天地山川得方圓流峙之形 日月星辰經律助迴之度 蟲魚鳥獸屈伸飛勤之理 雲巌草木霏希源蔓之狀] [右書法傳 乙巳菊陽關東桐湖云者 醉墨]

병녀가 화장을 잘 단장하니 가히 한탄스럽다. 정자(程子) 왈, “이것이야말로 곧 학문인 것이다.“ 주자(朱子) 왈, ”반드시 일이 여기에 있게 하면 신명함이 그 덕을 밝게 한다.“ 즉, 한 점 한 획 그어가는 중에 알 수 있다. 사상팔괘(四象八卦)의 형체이다.

천지와 산천이 둥글고 모나고 우뚝 솟은 형상에서 연유한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지나가는 법칙이고 서로 도우며 도는 법도이다. 벌레와 물고기 새와 짐승이 몸을 굽히고 펴며 날고 애쓰는 이치이다. 구름과 바위 초목이 눈 펄펄 드날리며 앙모한다. 덩굴 풀의 뿌리(칡뿌리)가 출처다.

서법정전(書法正傳)에 붓을 잡는 방법이 있다. 1845년 국양을 관동의 동호라 한 것이다. 술 취(醉)해 쓴 글.

[주1] 돈왕(燉王)과 병녀(病女) : 돈왕(燉王)은 선대(先代) 왕의 기사단 마구간을 관리하던 자였다. 혼란스러운 나라가 통일되자, 기사들은 각지의 영주로 봉해졌다. 기사단의 원래 참뜻은 영주들의 횡포로 그 빛이 바랬다. 이에 늙은 돈왕은 미치게 되었고 매일 저잣거리에 나와서 말세(末世)라 외치고 다니며 스스로 왕이라고 하였다. 병녀(病女)는 온갖 희귀한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곱추등을 펴고자 광목을 둘둘 말아 다녔고, 얼굴의 흉측한 모습과 진물을 숨기려고 두터운 화장을 하며 정상인과 같이 보이려고 부단히 애썼다. 다만 목소리가 고와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왕이 눈먼 장님인 선비에게 결혼을 시키고 은전 천 냥을 하사했다. 이에 병녀는 날마다 왕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하루는 저잣거리에서 서로 마주쳤는데 돈왕이 병녀를 보고 ‘미친년’이라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왕은 돈왕을 감쌌다. 왕은 “뜻을 지키려는 의리있는 자며, 의리는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라 하였다.

[주2] 필유사언 신명궐덕(必有事焉  神明厥德) 주자공 서자명(朱文公 書字銘) : 붓을 잡아 호를 적시고, 종이를 펴고 글씨를 쓰면, 한 마음이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점과 획들을 만든다. 뜻이 방종하면 거칠어지고 연미함을 취하면 의혹되나니, 반드시 일이 여기에 있게 하면 정신이 그 덕을 밝게 한다. [握管濡毫  伸紙行墨  一在其中  點點劃劃  放意則荒  取姸則惑  必有事焉  神明厥德]

[주3] 사상(四象) 팔괘(八卦) : 사상(四象)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팔괘(八卦)는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가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괘를 말한다. 주역(周易)에는 음양(陰陽), 사상(四象), 팔괘(八卦) 등 우주관을 담고 있다.

[주4] 경률(經律) : 교리를 주로 하는 불타의 설법을 결집한 경장과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을 결집한 율장. 경(經)과 율(律)과 논(論)의 삼장(三藏). 여기서는 달과 해가 지나다니는 법칙을 일컬음.

[주5] 원만지상(源蔓之狀) : 동록선생께서 실제 칡뿌리로 붓을 만들어 적었다고 전함. 이에 칡뿌리 붓으로 번역하였다.

[주6] 갈필(葛筆) : 대형 칡붓은 보통 30년이 넘은 칡을 빻아 말린 뒤 그것을 붓으로 만든다. 큰 붓은 털의 지름이 20cm 가량 된다. 특히 칡에는 균이 없어 천년을 두어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 붓은 쓰면 쓸수록 매끄럽고 수려하게 써지는 반면, 칡으로 만든 붓은 쓰면 쓸수록 함이 강해져, 서체 고루고루 원초적(原初的)인 생명력(生命力)이 발산된다. 칡서란 칡뿌리를 빻아 만든 붓으로 그린 먹그림이다.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