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이 책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재첩의 맛', '햐, 이거 정말', '묵묵깜깜', '어쩌다가 눈마저', '물고기가 궁금해', '아직은 괜찮아', '슬그머니' 등 8편의 단편을 실었다. 소설 제목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은 '챔피언'을 꿈꾸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밑바닥 인생들이다.

임시직 떠돌이 노동자('묵묵깜깜'), 청년 백수('물고기가 궁금해', '햐, 이거 정말', '챔피언'), 수리 전문 조선소 노동자('슬그머니', '아직은 괜찮아'), 식당 여자('재첩의 맛'), 보험 외판원('어쩌다가 눈마저') 같은 존재들이 소설속에 등장한다.

대기업 간부('어쩌다가 눈마저')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놓여 언제 실직 당할지 모르는 위기에 내몰려 있다. "이리 작은 게 왜 이렇게 아파? 지웅이가 제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그러게 말야, 아빠는 이런 게 수없이 손이고 발바닥에 박혔으니 얼마나 아프셨겠니? 누나가 뽑은 것만 해도 쇠못 서너 개는 될 정도니 말야. 와우, 그럼 우리 아빠는 예수님이네? 손발에 쇠못을 박고 죽은 그 사람 말야.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갑자기 속이 싸르르, 아려온다. 그래, 지웅이의 말이 맞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온 예수님이시다."('아직은 괜찮아' 부분·196쪽)

소설의 주인공들은 성장과 효율을 앞세운 자본주의 시대, 가난이 가난을 낳고 격차가 격차를 낳는 세상에서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속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은 쉽게 낙관하지도 쉽게 좌절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연민하고 이해해가며 맞닿아 살아가고자 한다.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햐, 이거 정말' 속 '나'가 조선족 여자가 낳은, 자신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동생 상우를 향해 형제애를 표현하는 장면은 가히 감동적이다.

"녀석도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말없이 곁에서 살구놀이만 하고 있다. 녀석의 모습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 불모지 같은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아플 수밖에 없는 녀석. 녀석은 이 세상의 거친 바람을 견디고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놀이에 빠진 녀석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야, 박상우.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우리, 같이 살구놀이할까? 녀석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62쪽)

이상섭 작가는 거제시 사등면 두동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5리나 떨어진 신작로를 따라 기성초등학교를 다녔다. 15리 길을 더 걸어 성포중학교를 다니고, 꽁보리밥 자취생활을 하며 통영고를 나왔다. 그후 동아대학교 국문과를 거쳐 부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작가 공부를 계속했다.

이 작가는 그동안 ‘슬픔의 두께’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 ‘바닷가 그집에서 이틀’ 등의 소설집을 통해 태어난 곳인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독특하게 엮어 문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굳세어라 국제시장’이라는 르뽀집은 피난 1세대 상인들의 끈질긴 밑바닥 인생을 직접 발품을 팔아 엮어 내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현재 부산 해운대관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004년 제9회 부산소설문학상, 2007년 제6회 부산작가상, 2010년 제3회백신애문학상, 2013년 봉생문화상을 수상했다.

이상섭 씨는 이번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어릴 적부터 난 수평선만을 바라보며 자랐다. 그런 덕분인지 자연스레 '수평세상'을 꿈꾼다. 그러니 이번 소설도 수평세상에 대한 개인적 기도문과 다름없다."(242쪽)

서영천 기자  syc6871118@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