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을을 맛보기 위해 장승포항을 찾았다. 장승포는 항구가 잘 발달되어 있는 지역적인 특성과 청정바다의 풍부한 수산자원, 문화적 정취와 여유가 묻어나는 고저늑한 풍경을 자랑한다. 여기에 장승포 사람들이 만들어낸 맛깔난 먹을거리는 또 하나 대표 자랑거리다.

장승포는 청정한 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생선을 계절별로 즐길 수 있는 맛의 고향이다. 멸치 회, 볼락매운탕, 전어구이, 간장게장, 갈치 회, 장어구이, 해물뚝배기 등 장승포에 가서 무엇을 맛봐야 하는지 물으면 일일이 대답하기 힘들 정도로 먹을거리 천국.

특히 1년 내내 멸치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를 맛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을 멸치는 기름이 촉촉이 올라 횟감으로 일품이다. 보통 어른 중지만 한 멸치는 뼈만 발라내고 회로 먹기도 하는데 미나리와 야채, 양념을 넣고 무쳐서 먹기도 한다. 항구에서 불을 피워놓고 석쇠에 구워먹는 구이도 맛있다. 얼큰하고 구수한 멸치찌게도 일품인데 싱싱한 멸치와 시래기가 가득 들어있어 술안주나 한 끼 식사로 그만이다.

멸치는 세멸, 자멸, 소멸, 중멸, 대멸, 등 크기가 다양하다. 쓰임새도 볶음용, 무침용, 튀김용, 찌개용, 젓갈용 등으로 다르다. 멸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지리, 가이리, 고바, 주바, 오바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들 멸치가 모두 한 종류라는 것이다. 다만 태어나고 자라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멸치는 봄과 여름에 산란한다. 멸치 한 마리가 4.000~5.0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면 믿겠는가. 하긴 그 정도 낳지 않으면 상위 포식자는 물론 인간마저 불을 켜고 잡겠다고 달려드는 등쌀에 잔뜩 씨가 말랐을 것이다. 멸치는 산란 후 이틀이면 부화를 한다. 그리고 이른 봄에 태어난 멸치의 경우 봄이 가기 전 어민들에게 기쁨을 줄만큼 빠르게 자란다. 그만큼 생식주기가 짧다. 보통 물고기의 나이는 비늘을 보고 알아내지만 비늘이 없는 멸치는 이석, 즉 귀속에 들어 있는 돌로 태어난 시기를 알아낸다고 한다.

멸치는 먹이를 따라 산란할 장소를 찾아 월동을 위해 동해에서 서해까지 여러 해역을 회유한다. 그래서 부르는 이름도 멸, 메르치, 멸따구, 밀, 행어 등 다양하다. 겨울에는 제주도까지 내려갔다가 봄과 여름에 연안으로 접근해 산란하고 서해와 동해로 북상한다. 그리고 가을철에는 남해를 거쳐 홍도와 제주도로 내려온다.

이때 멸치를 먹고사는 갈치와 고등어, 돔, 농어 등이 뒤를 따른다. 심지어 상괭이나 돌고래도 자주 출몰한다. 결국 멸치가 있는 곳에 어장이 형성된다. 바다가 인간들의 식량창고가 아니듯이 멸치는 인간만이 즐기는 생선이 아니다. 그것이 해양 생태계다.

정치망과 유자망은 연중 멸치를 잡는 것이 가능하지만 가장 많은 위판액과 어획고를 올리는 기선권현망 멸치잡이는 매년 7월1일부터 이듬해 3월까지 조업하며 4월부터 6월까지는 어자원 보호를 위해 금어기로 지정돼 있다. 거제는 통영과 마산, 사천, 남해 등 경남 곳곳에 흩어진 60여개가 넘는 멸치잡이 선단의 본거지중 한곳이다.

깊어가는 가을. 홍도 앞바다에서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멸치 배 선단의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장승포 포구는. 김장 멸치를 사려는 사람은 물론 멸치요리를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장승포에서 멸치 요리로 가장 오래된 신부시장에 위치한 영남식당을 찾았다. 빈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미 외포 항에서 멸치무침을 먹어 봤던 터라 멸치구이와 멸치찌게를 주문했다. 양이 좀 많은듯했지만 외포 항에 비해서 값이 싸서 부담은 덜했다.

멸치요리를 먹기 위해 들어온 손님들이 제일먼저 찾는 것이 멸치 회 무침이다. 식사보다 먼저 한잔 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뼈를 발라낸 멸치에 미나리 양파, 상추 등 각종채소와 함께 초무침을 하는 것이 멸치 회다. 상추에 싸 먹어도 좋지만 생미역에 싸먹으면 더욱 좋다. 장승포항에서는 판매하는 횟감용 멸치를 직접 구입해 직접 만든 초장에 각종 야채를 넣어서 무쳐 먹어도 좋다.

성질 급한 사람은 멸치구이부터 주문한다. 연탄불에 구어서 주는 곳도 있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 그리고 따뜻하고 물컹한 멸치 살이 입안에 가득하다. 멸치찌게는 먼저 우거지나 시래기를 된장에 잘 버무린 다음 생멸치를 넣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버섯 등을 넣고 끓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육수가 반쯤 줄어들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간도 맞고 멸치에서 나는 육수와 된장이 서로 어울린다.

장승포항에서 생멸치를 고르면 천일염과 버무려 숙성되기를 기다렸다 김장할 때 사용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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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손영민/꿈의 바닷길로 떠나는 거제도여행 저자

-멸치이야기(출처: 거제수협 055-682-4171)
멸치로 담그는 멸치는 8cm 내외의 중형멸치가 좋다고 한다. 중형멸치가 육질이 충실하고 신선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멸치젓에 들어가는 각종 성분 중에서 아미노산은 젓갈 특유의 맛과 향기를 갖게 하고 품질과 영양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젓갈로 담가진 원료는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유리아미노산의 함량이 증가한다. 특히 2~3개월 정도 숙성한 멸치젓의 유리아미노산은 원료멸치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멸치젓 특유의 감칠맛은 유리아미노산과 맛을 일정 유지하게 유지하는 성분으로 알려진 핵산과 어울림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라 한다. 이렇듯 영양은 물론이고 맛과 향기에서도 가장 손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발효식품 왕국인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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